.. 얼마전에 DC 국축갤(국내축구 갤러리)에서 안양LG 머플러 공구가 있어서 한장 구입. 내가 안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안양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일단 다른 팀 머플러도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안양시티즌에게 수익금은 후원금액으로 들어간다 해서 겸사겸사 구입.
.. 안양LG 머플러. ⓒ 2007. SOrCErEr
.. 사진은 친구녀석에게 부탁해서 찍었다. 아무래도 이런건 친구놈이 제대로라서. :)
.. 어쨌거나 지금은 잘 개어서 서랍속에 두었음. 저 LG라는 로고가 참으로 안습이다... 후우 y-~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
.. 하루가 다르게 폐인생활의 정도가 심해져 이제는 거의 히키코모리[각주:1]와 NEET[각주:2]에 가까운 생활패턴을 보이게 된 요즘. 졸업을 반년 남겨두고 취직은 발등의 불인 상황에서 이 생활 패턴을 바꾸려면 뭔가 강렬한 자극이 필요했다. 워낙에 게으름이 천성이고 하루종일 뒹구는게 취미인 인간인지라 마음 먹는 것 가지고는 꿈쩍도 안한다. 아니 핑계는 제쳐두고 그냥 하루가 다르게 가라 앉고 있었다. 내 삶이.
.. 요즘들어 나는 종종 '하루종일 걸으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게 처음은 아니고 1999년 11월에 제주도를 100km 정도 걸었던 일이 있다.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를 하면 약 200km 정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제주시 중심에서 출발해 서귀포시 중심까지 다다랐으니 반 정도를 걸어서 간 셈이다. 대략 38시간 정도 걸렸는데 중간에 해안가 벤치에서 6~8시간 정도(시간이 가물가물하지만 저정도였다) 잔 것을 제외하면 30시간 정도에 100km 정도를 걸었으니 꽤나 엄청난 속도로 걸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80km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 아무튼 그 때도 아침부터 걸어서 다음날 해 뜨고 나서야 잠을 청했으니 대략 20여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체력도 떨어졌고 만성적인 운동부족(그 때도 이건 별반 다름이 없긴 하지만)에다가 한겨울! 마침 장시간을 걸어본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해진 마당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나날이 망상은 심해져가고 루트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 청계천을 지나 서쪽으로 가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다가 결국은 친구와 술먹으면서 나온 말이 직격. 남쪽으로 안가본 곳을 가보는 게 어떻냐는. 하남이나 성남은 몇 번 가봤고 해서 그 쪽은 처음부터 제외했고, 그냥 대치동과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구경한 다음엔 마음 가는대로 가자는 결로 결정을 내렸다. 6시간쯤 지나면 다리가 아파서 속도가 안나오니 대략 시속 2km정도로 평균 속도를 낸다면 50km 정도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목표 거리는 50km 근방. 24시간 내내 걷고, 중간에 휴식은 마음대로. 밥이든 담배든 사는 것도, 현지 조달도 뭐든 OK. 단지 교통수단만을 제외하고 오로지 걷기에만 의존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목표였다.
.. 하지만 역시나 천성이 어디가는지 계절학기가 끝나고 K리그 팬들의 MT도 무사히 마친 상황에서 청소와 손빨래 하기 귀찮다고 하루하루 미루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흘러 수요일 새벽. 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전날 저녁에 급격히 졸려와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목요일 새벽 한시. 대충 일어나 놀다가 오늘이 아니면 출발 못하겠다는 생각에 청소와 빨래를 해놓고 적당한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 06:23 집
.. 06:23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에 있는 자취집을 나서서 영동대교까지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동2로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담배와 스니커즈(소)를 샀다. 스니커즈를 바로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화양사거리로 향했다. 날은 아직 어두웠고 화양사거리에 있는 비교적 저렴한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다시 출발한 시간은 07:07. 직선으로 쭉 내려가면(남하하면) 성수사거리를 지나 영동대교가 나온다.
.. 영동대교 북단. 동이 터오기 시작해 어스름한 하늘이다.
.. 영동대교는 아직 IC변경 공사가 마무리가 안되서 보행자 진입로가 없어졌다. 약간을 헤매다가 공사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봐서 가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차로는 무수히 많이 지나다닌 길이었지만 걸어서는 처음!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영동대교를 걷기 시작했다.
.. 영동대교. 출근 차량이 적지 않은 수였다.
.. 대형 유조차가 지나가니 꽤나 다리가 떨렸다. 아마 IC변경 작업으로 인해 그다지 탄탄하지 않은 부분이었던것 같다. 은근히 놀라운 느낌. 그야말로 지진이라도 난듯이 떨리는게 묘한 느낌.
.. 영동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강북.
.. 멀리 보이는 다리가 청담대교.
.. 괴물의 배경? 뚝섬유원지 방향
.. 영동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강남.
.. 올림픽대로의 출근차량 러쉬!
.. 영동대교를 지나 삼성동과 신사동의 갈림길에서 삼성동쪽으로 길을 틀었다. 청담역을 지나 바로 있는 경기고 앞을 지나는데 익숙한 이름의 현수막이 보였다.
.. 아시안 게임의 스타. 박태환을 기념한 현수막.
.. 며칠 전 읽었던 어떤 블로그의 글에 동네 사람에 대한 현수막이라던가 신문기사는 그 지역의 자존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던데 과연 그랬다. 과거 KS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유명했던 학교는 평준화 이후에 달라진 상황에서도 이런식으로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이겠지.
.. 한국의 최고가 아파트 중 하나 삼성동 IPark.
.. 경기고에서 약간만 더 가면 한 때는 부동의 1위였고 지금은 현대건설의 힐 스테이트 덕분에 자리를 내어준 삼성동 아이파크. 내 친구는 그 근처 회사 기숙사에서 살 때 누워 자려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저 아이파크 옥상의 아이파크 광고 네온이 그렇게 싫었다나 뭐라나…….
I'PARK라는 입구와 그 안의 모은행의 '해외유학이주센터'의 묘한 어울림
.. 묘한 느낌. 당연한 현상인 것을 마음속에 어딘가 묘하게 느껴버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지만 여기만이 아닌 이후 걸은 곳에서도 이른바 부촌이라는 곳에서는 저 센터가 반드시 있었다. 과연. 하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약간 더 갔더니 자동차 수리 전문점인 듯한 곳에 묘한 차가 서 있었다.
.. 아마도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 호홍~ 이 동네는 이런 차도 보이는구나~ 라는 느낌. 한번 타보고 싶긴 한데 저 차 가격이 얼마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무르시엘라고는 AUDI와의 합작품이라 개량된 알루미늄 섀시를 사용해서 기존 람보르기니보다는 가격이 꽤 낮은 편이라던데…….
.. 이번엔 오피스텔의 지존 삼성동 I'PARK 오피스텔.
.. 어째 점점 부동산 전문 사진이 되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 대형 건축물이라는 게 그렇고 그런거다. 나름 멋진 전방부 디자인. 하지만 안에 살고 있으면 저거 의외로 조망권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 이 즈음 와서 배가 아파와 ASEM 타워 안의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나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 해가 떴다!
.. ASEM을 나서자마자 해가 뜬 모습이 보여서 사진 한 방. 이후 꽤 긴시간 내 여행을 옆에서 비춰준 고마운 존재. 구름한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해가 떠서 따뜻했다. 휴식을 취하고 난뒤 테헤란 로와 일원터널방향을 고민하다가 일원터널 방향으로 결정. 계속 남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 대치동 대로변 가로수.
.. 삼성역을 지나 일원터널 방향으로 가는 길은 차도도 넓은데 인도도 넓다. 가로수가 2중으로 되어 있는 거리는 도심에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길거리 분위기를 자아낸다. 뭔가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할까. 마천루가 즐비한 길이더라도 이정도의 여유가 있으면 좋다고 할까.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만 여름이면 그늘도 대충 만들어 지기 때문에 나름 상쾌한 걸음이 될 것같은 느낌.
.. 이 길을 접어들기 전에 나는 분명 이 길을 가본적이 있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갔었는지가 기억이 안났었는데 길에 접어들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과거 엄청난 폐인생활의 결과 인생자체가 피폐했던 01년 초. 생활고에 찌들려 알바를 구해 어찌어찌 갔던 곳이었다. 그 때 고작 2~3일만에 짤렸던 벤처회사가 있었던 곳이 이 길을 지나서 있었다. 이유는 근무태도가 나쁘다는 것. 당시에 서적들을 스캔하고 잘 안나오는 것을 일일이 보완해서 텍스트 입력 작업을 하는 알바였는데 속도는 빨랐지만 귀에 노래꽂아놓고 작업하는게 맘에 안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화장실도 자주가고 담배도 많이 피고(물론 나가서). 어쨌거나 나는 그제서야 근태가 상당히 중요한 항목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름 소중한 기억이랄까. 하지만 그 회사의 흔적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벤처거품이 꺼질 때 같이 망해버린 걸까?
.. 계속 남쪽으로 내려와 CETEC이 있는 사거리에서 대치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줄줄이 고층 아파트. 은마 아파트, 미도 아파트, 선경 아파트……. 아파트만이 거인처럼 높게 솟아 있었다. 여기가 대치동이구나. 이른바 흔히 회자되는 대치동. 강남역 주변이나 전에 살던 방배동과는 또 다른 느낌. 계속 쭈욱 지나쳐 도곡역을 살짝 지났다.
..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 크다! 높다! 과연 부의 상징! 한국에 고급 주상복합 시대를 연 거인. 여기 사는 사람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것을 궁금해 하면서 그냥 건물 사이를 좀 걸어가 보려고 했더니 차량안내원인 듯한 사람이 "어이~ 들어오면 안되요!"라면서 제지한다. 아 놔. 건물안에 들어가려는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냐! 쳇쳇쳇! 그리고 도곡역으로 돌아가 잠시 쉬었다. 이 때가 09:25. 출발한지 세시간이 지난 시간. 오른쪽 무릎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계속 서쪽으로 가봐야 양재역이 나와서 재미 없을 것 같았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개포동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양재천. 나름 꽤 긴 하천이다.
.. 개포동에 접어드니 대치나 도곡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강북 단지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나름 꽤 오래된 듯한 아파트들이 있었고 길도 많이 좁고. 개포동의 끝까지 다다르자 양재대로가 나왔다. 동쪽은 일원터널행 서쪽은 양재IC행. 어쩔 수 없이 양재대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터널을 지나는 것도 싫었고 지나봐야 성남이니까.
.. 개포동 건너 구룡마을. 여긴 그냥 시골 풍경.
..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 답게 구룡마을은 마을이었다. 산자락에 껴있어서 그런건지 아파트도 없었고. 설마 그린벨트? 아무튼 양재대로를 따라 쭈-욱 걸었다.
.. 능인선원. 독특한 분위기였다.
.. 양재 대로가 끝나면 양재 IC로 가게 된다. 그 즈음에 발도 다리도 허리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양재 IC 가기 바로 전에 양재화훼공판장이 있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
.. 양재화훼공판장 입구엔 트럭이 덤빈다.
.. 양재 IC 부근에는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차들과 화물차 터미널, 이마트, 하이브랜드 등도 있고 해서 차가 겁나게 달린다. 사람이 잘 걸어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지 차들도 그다지 보행자를 신경쓰지 않기에 꽤나 조심해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그리고 하이브랜드를 지나자마자 과천시로 접어들었다.
.. 그냥 가게 분위기가 맘에 들어 찰칵. 난 이런 거에 꽤 약한편.
.. 과천! 사당에서 수원에 갈 때 버스로 지나간 적은 있지만 그냥 가본 적은 한번도 없는 곳! 정부종합청사, 서울대공원, 경마공원으로 유명한 곳! 나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천시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화훼단지와 농촌풍경. 서울을 지나자마자 이런 모습인가! 하는 괴리감에 잠깐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겠나, 원래 그런 것이지. 역시 화물차가 많이 다녀서인지 차들이 엄청나게 달려댔다. 인도가 좁아서 차들이 달리니 꽤나 무서운 느낌.
.. 천주교 우면동 교회
.. 과천을 걸으면서 목이 조금 말랐는데 슈퍼도 편의점도 한동안 나오질 않아서 좀 고생을 했다. 그러다 쉴 때쯤 해서 우연히 슈퍼 발견. 아이스크림 1개와 포카리스웨트 500ml 1병 구입. 천주교 우면동 교회 앞에서 쉬었는데 뭔 차가 평일에 그렇게 서있는지 신기. 교회 옆에는 금속박물관이라는 데가 하나 있었는데 개관을 안한 듯 했다. 개관을 했으면 잠시 들려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쉬움. 이 때가 출발한지 5시간이 지난 때였다.
.. 계속 과천시내를 향해서 걷다보니 과천대로와 남태령로가 갈리는 길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나는 여행을 할 때 지도가 있으면 지도를 참고, 없으면 교통 표지판을 참고해서 방향을 잡는 편이다. 이번엔 꽤나 즉흥적인 여행이라 지도가 없었기에 교통표지판을 참고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왠지 과천시내를 가려면 중간에 지하차도로만 가야하는 느낌이 드는 곳이 바로 이 갈림길이었다. 지하 차도로 가기는 뭐한데다 다리도 엄청나게 많이 아파오기 시작한 때라 길을 건너(단순 지하보도였는데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있더라. 사용을 하도 안해 거미줄이 다 쳐져있더구만. 덕분에 잘 건너긴 했어도) 남태령로로 접어들었다.
.. 최사립효자정각. 쉽게 말해 효자문.
.. 남태령로를 걸어 내려오니 바로 꽤 큰 테니스 코트가 줄줄이 있는 관문체육공원이 있었고 그 뒤로 서울대공원과 경마공원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왔다. 그 즈음에 묘한 사당 비슷한게 있길래 가 봤더니 위에 나온 효자문이 하나. 이런게 걸어서 여행하는 묘미랄까. 난 저런거 은근 좋아한다.
.. 서울대공원 입간판 꽤 큰 놈
..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내가 어릴 땐 분명 TV광고도 꽤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게 비교도 안되게 밀린 듯한 느낌이 든다. 주위에 테마 파크 다녀왔다 그러면 거의 에버랜드 아니면 롯데월드니까. 어째서 그런 걸까. 서울대공원과 경마공원도 가보고 싶었지만 다리도 꽤 아프고 거길 갔다 과천시내로 가려면 너무 멀어서 그냥 과천시내로 향했다. 얼마간 더 걷다보니 양재천이 다시 보이고 주택단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 남태령로에서 부림동으로 들어가는 다리와 부림동 모습.
.. 부림동에서 과천청사로 갈라지는 길에서 잠깐 쉬었다. 부림동은 꽤 아기자기하고 예쁜 주택단지였다. 재개발 추진 위원회 현수막이 걸려있던데 굳이 대형 아파트단지로 변할 필요가 있을까……. 그정도로 내게는 맘에 들었다. 잠시 쉬고 과천청사를 향해 걸었다. 허리도 아팠지만 잠시 쉰 다음부터 허벅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속도는 현저히 떨어져 시속 1~2km 정도밖에 내지 못한 것 같다.
.. 과천 시내 주택 단지 모습
.. 과천은 자그마한 느낌의 아기자기한 주택단지가 매우 예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바둑판 처럼 배치되어 칼같이 정리된 느낌도 나름 대단한 느낌을 주지만 어딘지 모를 답답함을 주는 반면에 과천은 잘 정돈된 자그마한 화원을 보는 느낌이랄까. 뒤로 관악산을 끼고 있는 모습이 매우 맘에 들었다.
.. 과천 거리 풍경
.. 나는 과천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른게 아니라서 대형 주택이나 상가들을 모조리 못보고 지나쳤다. 하지만 이 주택단지 거리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보고 지나간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대전의 계획단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 거기보다 더 여유롭달까. 유흥가도 시내 한가운데 말고는 없는 듯 했고……. 애가 생기면 와서 살만한 동네가 아닐까 싶은 느낌도 들 정도.
.. 과천 시청
.. 정부 종합 청사. 저 건물 말고도 많다.
.. 정부종합청사 안내판
.. 종합청사를 들어가 볼까 했지만 앞에서 금속 노조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하기야 금속 노조만이 아니라 다른데서도 뻑하면 시위를 올 거 같은 느낌이긴 했다. 의경 애들도 있고 해서 괜시리 멀뚱멀뚱 구경하는 거 보다는 그냥 빨리 발걸음을 돌리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허벅지가 비명을 질러대서 어떻게 여유있는 관람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긴 했다.
.. 과천에서 안양으로 향하는 47번 국도에 접어들어 얼마 안가 잠시 쉬었다. 이때가 대략 출반한지 7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안양은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겠는데다 다리도 너무 심하게 아파서 근처 길가에서 누워 30여분을 지냈다. 이제 한숨 좀 나아졌을까 했는데 웬 걸. 다리가 더 아파오는 것이 아닌가. 거의 눈물날 정도로 아프던데 이건 어떻게 해볼 수도 없고. 그저 아픈 다리를 이끌고 절뚝절뚝 걷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직도 시간은 1/4을 겨우 넘은 수준밖에 안됐으니까.
.. 안양시에 접어들면 보이는 것
.. 14:00경에 휴식을 멈추고 출발했는데 의외로 14:30경에 안양에 도착했다. 그보다 훨씬 멀줄 알고 고민했던게 바보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인덕원역을 지나 버스정류장에 가봤더니 안양시 지도가 있었다. 과천은 드문드문 지도가 있긴 했지만 그리 많지 않아서 꽤나 고생했는데 안양에는 지도가 있어서 꽤나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현위치가 표시가 안되서 항상 주위를 주의깊게 살펴야만 했다.
.. 인덕원역 근처 풍경. 강북 느낌?
.. 안양도 처음 가보는 곳. 여긴 정말 태어나서 처음 가본 곳이다. 차로도 지나가본적이 없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접한 안양. 인덕원역 근처의 느낌은 의외로 강북의 느낌이었다. 높고 낮은 상가가 공존해 있고 길은 여기저기로 휘어 있고. 과천의 대전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비교가 되면서 재미 있었다. 인덕원역 근처의 싸구려 밥집에서 얼렁뚱땅 끼니를 떼웠다.
.. 안양은 나에게 있어 조금 묘한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K리그에 포항 서포터로 참여한 것은 2004년 말. 그런데 04년은 안양에 있던 안양LG 축구단이 서울로 연고이전을 한 해다. 현 FC서울GS스포츠가 바로 그것이다. K리그 내에서 유명한 라이벌이 바로 수원삼성과 안양LG였고, 안양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고개가 지지대고개여서 지지대 더비라고 불리기도 했던, 한국 축구에 꽤 많은 스타를 배출해냈고 지금 토트넘에 있는 이영표의 원 소속팀이기도 했던 안양. 부천, 전북과 더불어 최고 강성 서포터로 유명했던 안양의 A.S.U. RED 등 유명한 것은 너무나도 많지만 나에겐 알 수 없는 이야기일 뿐.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일 뿐. 나는 04년 초, 안양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안양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안양종합운동장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역시 다리를 절뚝거리며.
.. 주경기장의 조명탑이 보인다.
.. 속도가 현저히 줄은 탓에 그리 먼거리 같진 않았지만 대략 한시간 여를 걷고 나니 안양종합운동장이 보였다. 조명탑이 독특하게 멋있는 느낌. 서둘러 발걸음을 향했다.
.. 프로아이스하키와 프로농구
.. 가까이 가보니 광고판이 멋들어지게 달려 있다. 안양에는 현재 프로(아이스하키가 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업 선수니 사실상 프로임엔 틀림없고)팀이 두개가 있는데 바로 안양한라아이스하키단과 안양KT&G카이트농구단이다. 이 두 팀의 홍보 간판이라던가 현수막은 은근히 보았다. 프로팀이 두개나 있기 때문에 축구는 지지부진 한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 분명 이전엔 저기에 안양LG라는 것이 있었겠지.
.. 주경기장에 가서 경비원에게 물어봤더니 입장은 18:00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그 때 시간이 16:00 정도였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들어줄 것도 같았지만 정신도 없고 아프고 해서 그냥 말았다. 꽤나 트랙 너비가 되어 보이는데다 관중석의 각도가 좀 낮은 거 같아 축구관람에는 그다지 좋을 것 같진 않았지만 경기장 자체는 꽤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조명탑이 꽤나 멋있어서 인정. 그냥 발걸음을 돌려 터벅터벅 걷는데 보조구장 앞에는 안양 유소년 축구 모집 현수막이 걸려 있는게 나름 씁쓸한 느낌.
.. 이제 수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안양동 쪽도 가보고는 싶었지만 그럼 수원으로 향할 수도 없고. 지지대고개를 구경할 수도 없기에 안양에서 서쪽으로 가는 건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그래서 종합운동장을 나와 안양시청과 중앙공원이 있는 쪽으로 쭉 남하했다.
.. 안양 중심가
.. 안양 중심가로 접어드니 여기는 분위기가 분당 분위기. 고층 아파트들이 반듯하게 계획된 부지에 즐비하게 서 있고 고층 상가들이 일렬로 서 있는 분위기가 딱 분당이었다. 게다가 학원가로 불리는 듯한 학원 집중 구역을 지나자 사이사이로 먹자골목이 나 있고. 분당의 느낌. 인덕원역 근처의 관양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신선하달까. 안양이 서울의 베드타운이라는 말이 그다지 크게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 즈음해서 쉬다가 일어나는 것 마저 힘들게 되었다. 대략 출반해서 10시간 반이 지난 시점.
.. 안양 교도소. 이 뒤로 쫙 펼쳐 있다.
.. 먹자골목을 지나니 외곽순환도로가 나왔다. 이를 지나 쭉 갔더니 시다금(詩茶琴)거리라는 곳이 나왔다. 어떤 독지가가 기부한 땅이라는데 거기에 카페나 도자기 찻집, 문예관련, 도자기 등등 이른바 인사동과 비슷한 컨셉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거리였다. 난 외곽만 봤지만 얼추 비슷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직 덜 들어온 느낌이기도 했다. 잘 되려나? 시다금 거리를 조금 지나니 안양교도소가 나왔다. 겹으로 쳐져 있는 철조망벽과 여기저기 있는 고공감시탑. 교도소라는 분위기가 한 껐 나더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니 의왕시.
.. 이래보여도 오르막 -_-
.. 체력이 동이 나는 느낌? 오르막을 걷는데 너무 힘들었다. 헉헉대면서 걸어다녔다. 해는 슬슬 지기 시작하고 주위가 어두워져갔다. 의왕시는 그냥 지방의 고층 아파트 단지 비슷한 느낌. 좌우의 아파트단지가 고저차가 난다던가 하는 모습이 그런 느낌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의왕 시내가 나와서 담배 한갑과 드림카카오 72를 구입. 드림카카오는 열량 보충용으로 구입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원으로 향하는 경수로를 타야 하는데 편의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즈음 해는 완전히 져서 밤으로 변했다.
.. 경수로. 경수 산업도로. 차들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고 엄청나게 덤비는데 인도는 좁아 터졌다. 과천 진입시보다 약간 넓은 정도였기에 역시 겁나는 건 마찬가지 절뚝절뚝 거리며 걸어갔다. 19:42경에 지팡이로 쓸만한 나무를 득템했다. 덕분에 속도가 꽤 붙기 시작. 그 전까지 허벅지 비명 때문에 걷는 걸 포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는데 상당히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 수원까지 11km.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주욱 걸었다. 지금까지 온 거리는 그래도 집과 건물의 연속이 대부분이었고 날도 밝아서 주위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이 때부턴 날도 어둡고 그냥 길게 난 산업도로 옆을 계속해서 걷는 게 일이었다. 게다가 한 2km 정도 더 간 지점에서 부터는 건물도 사라지고 그냥 도로만 길게 뻗어 있었다. 중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느라 30분 정도 더 쉰 탓에 다리 피로가 약간 회복되긴 했지만 반대급부로 통증도 더 심해졌다. 그냥 주욱 주욱 걸어갔다. 그러고 한시간 정도 걸은 곳. 20:20분 정도에 나는 의왕시가 끝이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지지대(遲遲臺) 쉼터 표지판도 보게 되었다. 그랬다. 내가 걷는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지지대 고개였던 것이다! 물론 위에 적었듯이 K리그 팬에게만 유명한 곳이긴 해도.
.. 수원 입성하자마자 보인 것. 화성의 이미지
.. 의왕과 수원의 경계가 딱 지지대 고개를 넘는 도로의 최정상이었다. 바로 수원의 상징인 화성을 나타내는 조형물이 도로 양쪽으로 세워져 있었다. 위 사진을 찍고 나서 배터리가 다해 아쉽게도 이 이후에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바로 옆에 지지대비가 세워져 있었다. 시간은 대략 20:26. 출발해서 14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수원에 다다랐다. 수원역까지 갈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 수원에 들어가서 지지대쉼터에 있는 수원 지도를 확인했다. 보아하니 경수로를 그냥 쭉 따라가는게 가장 유리해 보였다. 그래서 마냥 걸었다. 마냥 걷다 보니 이제 수원 시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수원 시내에는 버스 정류장에 지도가 붙어 있어서 매우 좋았다. 거기에 현위치까지 표시되어 있어서 그레이트!
.. 수원에 입성하니 배도 고프고 해서 화성 근처에 지인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 냈다. 그래서 목표는 화성. 위치는 잘 모르니 한 가운데 장안문이라는 곳이 있어서 그 곳을 목표로 걷기 시작했다. 대략 6km 정도니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웬 걸. 이미 속도가 떨어져서 한시간에 2km 남짓을 걷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한참을 가다가 장안문으로 가기 전 종합운동장에 다다르기 30분쯤 전에 전화를 날렸다. 그리고는 종합운동장으로 일단 향했다.
.. 홈플러스가 있는 장안구청사거리에 도착하니 종합 운동장 야구장이 나타났다. 이때가 대충 22:10분 정도. 출발한지 16시간이 지난 상태. 근데 아까 전활 했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40분쯤 걸릴 것이라 한다. 듣는데 뭔가 이상했다. 오산쪽에서 출발한다지 않는가. 뭔가 이상해서 지도를 확인하니 화성은 맞는데 수원 화성이 아니라 '화성시'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먼 줄 알았으면 굳이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을 텐데 뭔가 대단히 미안한 느낌. 일단 좀 더 걸어서 만나는게 그 분께도 부담이 덜 될 것 같아 연무동 정도에서 만나기로 하고 열심히 걸었다.
.. 화성의 창룡문 끄트머리가 보이는 연무치안센터(파출소)에 도착한 것이 22:50. 30분만에 1.5km를 걸었으니 무지하게 무리한 속도를 낸 것이다. 이미 통각은 역치를 넘어섰는지 별 거 없었고 졸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 한계를 아득하게 넘어서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를 거쳐 지인과 만나고 밥을 얻어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이상의 여행은 포기. 체력도 모자랐고 잠이 오기 시작한 상태에 대략 4~5시간을 더 걷는다는 건 목숨을 내놔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 그래서 지인과 만나기 전까지를 종료로 잡고. 총 소요시간은 16시간 27분. 총 거리는 대략 44km. 그 정도쯤 됐다. 평균 시속은 2.67km 정도. 후반부에는 거의 시속 1.5~2km 정도의 느린 페이스였고 초반부가 시속 4km 정도 됐다. 아마 무리해서 더 걸었으면 6~10km 정도는 더 채울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그러다 죽고 싶지는 않았다. 몸에서 열도 꽤 많이 나는 상황이었고.
.. 아무튼 대략 하루종일 걸어서 44km 정도면 목표였던 50km에 거의 근접한 수치인데다 시간도 16시간 30분 정도라서 속도는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지금까지 못가본 곳을 잔뜩 가본데다 그 지역의 분위기를 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랄까. 동네의 분위기, 느낌, 그런것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은 내게 무척이나 큰 것이니까. 전체적으로는 이번 여행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허벅지 통증(6시간째부터)이 온 것에서 부터 아스팔트 혹은 보도블럭 길밖에 없어서 다리에 충격을 완화시켜줄 방법이 없었다는 점(흙이나 잔디길이 다리에 무리가 훨씬 덜간다)이 꽤 큰 문제였고, 찬 바람이 얼굴을 치고 지나가서 얼굴이 완전히 문제상태라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다음번에 하게 되면 길바닥에서 자도 되는 여름 정도에나 운동 좀 해서 체력을 기르고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다. 아예 다음에는 이번에 못가본 서울 남서쪽 부근에서 시작해서 서해안으로 타보는 것도 괜찮을 듯도 싶고.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
ひきこもり, 국역 은둔형외톨이. 하루종일 방에만 쳐박혀 몇날며칠이고 안나오는 사람. 심하면 몇년에 이르는 사람도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본문으로]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취직도 안하고 교육도 안 받고 훈련도 안하는 한마디로 날백수. 역시 신종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사회적 문제가……ㅜㅜ [본문으로]
.. 이스 오리진을 완클. 꽤나 오래 걸렸다. 실제 게임 상의 플레이 타임은 훨씬 짧지만 실제로 걸린 시간이 은근히 길다. 이하 네타바레(스포일러) 잔뜩 있는 잡설이므로 가려둠.
.. 처음에 이스 오리진이라는 제목과 700년 전의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이스의 건국과 부흥 그리고 마물의 습격에 의해 살몬 신전의 부상. 그리고 나타난 적과 그 적이 사라지기까지의 내용이 파노라마로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 프롤로그부터 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살몬 신전의 부상 후에 여신이 사라진 시점, 거기에 탐색대를 파견하는 것에서부터 내용은 시작. 이스 이터널판의 이스의 서 중에 젬마의 장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あいつが魔物を引き連れて追ってくる。人々がその恐怖に怯える中、女神が我々の前から姿を消した。それ以来、女神の姿を見たことがない。我々は女神に見捨てられたのか。그 놈이 마물을 끌고 쫓아온다. 사람들이 그 공포에 떠는 가운데 여신이 우리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이후 여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들은 여신에게 버림받은 것인가.」즉, 이스의 서를 기준으로 하면 여신이 사라지고 다시는 부상한 살몬 신전에 등장하지 않게 된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된다.
.. (c)2006.12 NIHON FALCOM
.. 어쨌거나 좋다.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에 나머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미네아 마을이나 잭슨 마을 등이 생기기 이전의 에스테리아를 돌아다니는 것도 나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유니카편 플레이 스타트. 하지만 이게 웬 걸. 로다의 나무(형)앞에 떨어지더니 갑자기 다므의 탑으로 직행. 어라라? 라? 라? 에스테리아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두근거리던 내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 오로지 대상은 다므의 탑 하나뿐. 게임의 필드가 바로 이곳뿐이었다. 좋다. 다므의 탑이라도 3D로 화려하게 부활 시켰겠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좌충우돌하면서 진행했다.
.. 이스 6부터 계속 써오던 게임 엔진이지만 훌륭하게 개량 된 느낌. 어쨌거나 9550변종인 내 컴퓨터에서도 밀리는 화면은 거의 없었다. 이정도면 훌륭하지. 사운드는 여전히 좋고, 익숙한 다므의 탑 곡들도 간간이 들려오고... 진행하다보면 악마의 회랑이나 라도의 탑, 거울의 방 등은 꽤나 맘에 드는 구조였다. 이스 1에서 사용하던 아이템들과 거대보스 들이 마구 등장하는 등 꽤나 반갑기도 한 장면들이 연출 되고 의외로 이스 1 시절에 써먹던 대 보스 전법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등 향수를 자극하는 배치는 괜찮았다.
.. 어쨌거나 여신오덕후 찌질 유니카를 어찌어찌 플레이 하고 난 다음 초급자용이라는 유고를 선택하여 재차 플레이 개시. 확실히 자코를 죽이는 데는 훨 편한데 문제는 보스전. 일단 기본적으로 데미지가 후달리는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덕분에 금새 끝날 것도 무진장 오래 걸리는데다가... 더 큰 문제는 바로 유니카 편과 진행이 똑같다는 것. 내용이나 인간관계 차이상 보스가 좀 달라지던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맵 진행 순서나 이벤트 진행 순서도 거의 동일하다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같은 맵을 두 번이나 플레이해야 하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운 레벨. 게다가 유고 이놈은 유니카보다 더 찌질해서 대화를 읽고 있자면 짜증이 버럭버럭 날정도. 어쨌거나 제 3의 캐릭터 토르편이 기다리고 있기에 지겨운 것도 참고 죽을 힘을 다해 플레이 했다.
.. 유고까지 클리어 하고 난 뒤의 감상은 미묘. 유니카편도 유고편도 그다지 와 닿는 것도 없고 그렇게 밝혀진 것이 많지도 않으며 굳이 이 두 개를 왜 쪼개놨을까 하는 심정이 강하게 드는 구조였다. 차라리 따로 행동하기에 보스를 완전히 나눠서 하나의 이야기를 다른 시점으로 보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따로따로 서로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
.. 어쨌거나 클리어 했으니 이제 대망의 토르편. 유니카편과 유고편에서는 적이었던 토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좋다. 적이니까 뭔가 좀 다르겠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역시 이번에도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다므의 탑 1층부터 훑어 올라가는 것은 마찬 가지. 같은 맵을 세 번이나 돌리게 하는 팔콤의 근성에 나름 감탄했다.
.. 짜증은 거의 만땅에 쳐할 지경이었으나 이제야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둘씩 등장. 과거의 이야기, 레아와 피나 와의 관계, 여러 캐릭터 간의 문제와 여신들이 내려가게 된 이유, 가장 마력이 강한 퍼크트(Fukt...라서, 퍼크트? 파크트?)가의 계승도 하지 않고 신전기사가 된 이유, 마의 인자를 몸에 넣게 된 이유, 적에게 협력하는 이유, 적이 어디서 온 자인지, 왜 여신은 아무 말이 없이 살몬 신전을 떠나 흑진주를 들고 다므의 탑으로 향했는지 등등이 게임 내내 하나 둘 씩 나온다.
.. 뭐 어쨌거나 라스트 보스에서만 죽고 또 죽고를 반복하며 한 시간 정도 걸려서 클리어를 하고 나니 엔딩에 추가된 장면이 살짝.
.. (c)2006.12 NIHON FALCOM
.. 아무튼 간에 이제부터는 신나게 정신없이 한 번 이 이스 오리진에 대해서 중구난방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 일단 이 게임의 주인공은 실제로는 유니카도 유고도 아닌 토르이다. 내용의 진지함이나 비중도 토르편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스토리 진행도 훨씬 매끄럽다. 물론 유니카편이나 유고편을 하지 않고 바로 토르편을 하면 어느 정도 스토리 진행이 매끄럽지 않겠지만 양 시나리오를 클리어 하지 않고는 토르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상쇄 된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진 시나리오인 토르편을 하기 위해 같은 맵을 세 번이나 돌게 하는 건 넌센스다. 차라리 그냥 토르편을 베이스로 하고 유니카편과 유고편에 나오는 내용을 설명이라든가 혹은 다른 이벤트를 배치하는 편이 훨씬 깔끔하고 좋았을 것이다. 같은 맵을 세 번이나 돌아야 하는 고통은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즐거움 보다 더 크다.
..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세 개가 결국엔 독립된 시나리오, 즉 패러럴 월드라는 점이다. 유니카 편에서는 덜레스(듈레스? 표기는 카타카나로는 다레스 지만 영어로는 Duless로 되어 있다. 이 녀석은 이스 2에도 등장. 1을 깬 후 나오는 비주얼 씬에서 다므에게 보고하는 마도사이다. OVA에서는 추악하게 나오지만 여기서는 초 미형)를 유니카가 무찌르고 대신 소꿉친구인 로이가 죽는다. 유고편에서는 덜레스를 유고가 무찌르고 대신 에포나가 죽는다. 하지만 토르 편에서는 토르가 무찌르고 죽는 캐릭터는 없으며, 덜레스 이후에 진정한 적이 나타난다. 그것은 카인 퍼크트. 바로 토르와 유고의 아버지다. 퍼크트가는 이스 시리즈에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PCE판 이스 4에서는 셀세타 지방의 레판스와 오충신 사후의 쇠퇴는 마도사 지크 퍼크트에 의한 것이고(SFC판과 PS2판에서는 이 내용이 등장하지 않음), YS1의 라스트 보스는 달크 퍼크트. YS4 PCE판에서 달크 퍼크트의 부활은 바로 키스 퍼크트(YS2에도 등장). 정신을 지배하는 신관 퍼크트의 가계답다면 답달까. 어쨌든 카인 퍼크트가 라스트 보스로서 다므가 됨으로서 다므의 탄생과 덜레스와의 상관관계 등이 밝혀진다. 게다가 카인은 이스를 침략한 덜레스에게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배신자이기도 하다.
.. 이와 같이 다른 분기에 진 시나리오 루트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3번이나 같은 맵을 뺑뺑이 돌게 하는 것은 심해도 너무 심한 일이다. 안 그래도 피나가 에로게 스타일의 그림으로 나와서 기분이 나쁜데(편견) 이건 게임 스타일마저 에로게? 일반 비쥬얼 노블 스타일의 에로게라면 동일한 대사 따위야 스킵 기능으로 넘길 수 있다 쳐도 이건 ARPG. 강제로 맵을 뺑뺑 돌아야만 하고 보스전을 반드시 치러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플레이 타임이 짧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나리오를 충실하게 집어넣어서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웅전설 6 천공의 궤적 SC에서도 괜히 사람을 뺑뺑이 돌게 만들어서 사람을 살짝 짜증나게 하더니 이젠 대놓고 삽질이다 팔콤. 그냥 한 가지 시나리오로 만드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토르편을 베이스로 삼고, 나머지 유니카와 유고의 움직임을 서브로 해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 게다가 이건 이스 오리진 이라기보다는 그냥 이스 외전이란 느낌. 물론 이스의 서의 내용이 토르편에 가면서 꽤 많이 나오고 여신이 흑진주를 봉인하여 지하에 잠드는 것까지 다루어 졌기 때문에 이스의 서의 내용을 충실히 살렸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스의 건국에 대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았다. 가볍게 다루어줬어도 좋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일단 유익인에 대한 것은 이스 4나 나피쉬팀에서 많이 다루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유익인에 대한 것으로 피나와 레아가 어떻게 탈출하고 어떻게 이스를 세우는지는 자세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게다가 진 시나리오인 토르편에서는 과거 아돌-리리아 혹은 아돌-피나(나는 아돌-피나 파이다)파의 활동에 질린 건지 아니면 레아가 불쌍했는지 은근슬쩍 토르-레아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은의 하모니카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도 나오고. 그런 면에서 오리진 보다는 그냥 외전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 이하는 몇가지 궁금증.
.. 마스크 오브 아이즈는 YS4에서 셀세타 지방에서 만들어진 ‘달의 가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달의 가면이 셀세타에서 사라진 것은 아돌 등장 500년 전. 즉 이스 부상 이후로 200년이나 지난 일이라는 것이다. 설정이 꼬인 걸까?
.. 프롤로그 이하 게임 내내 살몬 신전(이스 왕국)이 공중에 떠오른 것은 흑진주의 힘이라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덜레스는 살몬 신전을 떨어뜨려 흑진주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려 한다. 하지만 엔딩에서 흑진주는 속에 마의 근원을 품은 채로 여신들에 의해 봉인 당한다. 그런데 살몬 신전은 아무렇지 않게 떠 있다. 게다가 마법 역시 흑진주의 힘에 의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마지막에도 태연하게 전위마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이스 2에 가면 이스왕국은 하늘에 떠 있지만 이 시대에 ‘누구나 쓸 수 있는’ 마법을 사람들은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건 대체 어찌된 연유일까?
.. 덜레스는 토르 시나리오 중에 자신이 나피쉬팀의 궤를 폭주시킨 자들의 후예라고 말한다. 그렇다는 것은 그도 유익인의 후손이란 뜻인가 아니면 그냥 인간의 후손이란 뜻인가.
.. 「闇(야미, 어둠)」의 일족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에스테리아는 섬이므로 외부에서 왔다 하면 에우로페 대륙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카난 지방에서 온 것인가. 유고편에서 그들을 蠻族(만족, 오랑캐)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대륙 출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토르 시나리오에서는 토르가 살몬신전으로 되돌아가고 유고가 지상에 남는다. 따라서 키스 퍼크트는 토르의 자손이고 달크 퍼크트와 지크 퍼크트는 유고의 자손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지상에 남은 리코 젬마의 자손이 루터 젬마, 유니카 토바의 자손이 제바 토바란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니카는 여성이므로 남성의 성이 계승되는 것으로 가정했을 경우 말이 맞지 않는다. 설마 로이는 데릴사위가 된 것인가?
.. 이건 정말 쓸데없다면 쓸데없는 궁금증. 대체 탑 안에 용암이 흐르고 물이 차있고 모래가 흐르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흐른다는 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건데 위에 용암과 모래가 샘처럼 나오는 공간이라도 있나? 그리고 밑바닥에서는 어떻게 빠지는 것일까. 쓰잘데는 없지만 진짜 궁금하다.
.. 또 하나, 다므의 탑 안에서 우리를 도와준 여신상/사신상은 이스 1에 오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어쨌거나 아쉬운 부분도 있고 조금 짜증나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 이스는 이스다. 짜증나는 부분만 개선했으면 훨씬 즐거운 게임이 되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긴 해도 이 맛에 이스를 하는 것이 아니겠나. 하지만 가장 짜증나는 건, 이제 좀 그만 질질 끌고 아르타고의 오대룡편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난 이스 6가 나올 때 당연히 아르타고의 오대룡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6가 나피쉬팀의 궤로 나옴으로서 유익인의 멸망을 다뤘기 때문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르타고의 오대룡은 여신이랑 별 상관이 없는 동네라 그런가? 그래도 이제 굵직한 건 나올게 없는 것 같은데...
.. 아무튼 끝. 길었다. 자야지.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