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서 인천과 플레이 할 때면 포항은 늘 제 힘을 내지 못했다. 끈끈한 조직력을 갖춘 팀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그들의 플레이는 거칠면서도 조직적이었고, 홈 관중의 일방적인 분위기는 늘 포항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04년 경기 후반 44분의 골, 05년의 일방적인 경기, 심지어 06년에는 선제골을 넣어 앞서가다가도 조성환의 자책골로 통한의 무승부를 맛본 포항. 그들은 언제나 포항에게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다. 포항 팬들에게 있어서는 나름 저주받은 땅에 가까웠던 문학. 그곳에서 07년의 개막을 여는 포항으로서는 부담 아닌 부담을 가져야만 했다.
.. 하지만 인천도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뛰어난 지도력을 바탕으로 팀을 지휘하고 05년 통합승점 1위까지 올리게 했던 원동력인 외룡사마 장외룡감독이 유학을 떠나고 박이천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자리하였다. 게다가 인천은 역대 개막전에서 승리해본 적이 없다는 것도 불안 요소 중의 하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작년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던 주전들을 죄다 떠나보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 비와 바람,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 봄이라지만 아직 봄을 느끼기에는 살짝 모자란 3월 초. 겨울의 건조함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그치기를 반복. 경기장 주변에는 강한 바람과 비가 간헐적으로 내리는 날씨가 계속 되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몰려오기 시작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기를 시작하고 하프타임이 되도록 몰려오기 시작했으니 궂은 날씨는 이미 아무래도 좋다는 인천 사람들의 인유 사랑이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E석 1층이 대부분 들어차기 시작한 이 날의 공식 관중 집계 수는 24,772명. 가장 많은 팬 층을 자랑하는 수원 삼성의 홈경기에 근소한 차이로 뒤질 뿐이다. 단, 한경기로 평가하기에는 속단의 위험이 있지만 적어도 인천에서 인유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도 좋으리라.
.. 조직력 vs 조직력. 승부의 행방은 선수들의 집중력.
.. 포항은 요 몇 년간 늘 중위권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내왔다. 04년 준우승 05년 아쉬운 플레이오프 탈락. 06년 통합 2위, 플레이오프 진출. 게다가 특출한 대표선수 한 명 없이 진행되었고, 이동국은 06년 전반기를 제외하면 부상 혹은 부상 여파로 뚜렷한 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파리아스 감독의 조련 밑에서 성장한 포항의 붉은 전사들은 조직력이 살아나면서 미들을 장악하는 축구로 변모. 상대팀들이 쉽게 대할 수 없는 활발한 공격 축구를 선보였다. 성남, 수원, 울산 등에 비해 한 수 밑으로 평가되는 스쿼드를 가지고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조직력’ 이 한 마디로 결론지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인천 역시 05년 통합 성적 1위, 준우승. 06년 9위 하지만 5위 울산과 승점이 단 2점밖에 차이나지 않는 근소한 차이였을 뿐이다. 해마다 주전 선주를 대량 방출하는 시민구단의 재정한계를 보여주는 팀으로서 고무적인 성적이다. 뚜렷한 스타플레이어 하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장외룡 감독의 뛰어난 지휘능력과 선수들의 끈끈한 조직력이 바로 그 원동력. 역시 인천 하면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조직력’인 것이다.
.. 바로 이 두 팀이 맞붙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K리그 최고의 조직력을 자랑하는 두 팀. 그리하여 두 팀 간의 경기는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끈적끈적한 결과를 많이 내놓았던 것이 사실이다. 조직력 vs 조직력. 화끈한 공격 축구의 재미 보다는 축구에서 맛 볼 수 있는 조화로움 간의 대결. 그것이 바로 인천과 포항의 07시즌 개막전이다.
.. 변화가 없는 포항, 모든 것이 변한 인천
.. 인천 Utd. 4-4-2
.. 포항 스틸러스 3-4-1-2
.. 포항은 선발 투입이 예상되던 마우리시오, 최태욱, 최효진을 전부 제외했고, 마우리시오는 아예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작년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고기구, 황진성, 오범석 등 작년의 주전 멤버들이 고스란히 등장한 3-4-1-2 카드를 꺼내들었다.
.. 반면에 인천은 포메이션부터 선수까지 모든 것이 다 바뀌었다. 4-4-2. 하지만 4-1-3-2에 가까운 포메이션이었고 공격에 5명의 숫자를 배치한 대담한 공격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SK에서 이적해 온 김상록이 좌측 미드필더로 배치되었고, 이번에 데려온 용병인 작은 샤샤 데얀이 10번을 부여받으며 선발 출장해 팀의 기대치를 보여주었다.
.. 만개한 포항의 경기력, 아직 덜 짜인 인천의 조직력
.. 15:04분. 식전 행사 관계로 살짝 늦어진 킥 오프. 양 팀의 일전은 고금복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시작 되었다. 위 포메이션처럼 포항은 3-4-1-2, 인천은 4-4-2. 전반 초반의 주도권은 포항이 가져갔다. 탐색전으로 한 두 번씩 서로에게 공격을 걸어보던 전반 10분. 황진성이 상대 진영에서 인천의 볼을 가로챈 뒤 찔러준 패스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피해 쇄도한 고기구의 발끝에 걸렸다. 슬라이딩 하며 들어간 고기구는 인천의 키퍼 김이섭이 나오는 것을 보고 침착하게 칩샷을 시도, 인천의 골망을 흔들고야 말았다.
.. 인천은 곧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하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드라간, 좌측에서 김상록이, 우측에서 방승환이 정신이 없을 만큼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나 장신의 라돈치치를 이용한 타겟 플레이는 포항 수비진에게 강한 부담이 되었다.
.. 하지만 포항의 역습은 만만치 않았다. 수비에서 중원으로 이어지고, 중원에서의 잘 짜인 조직력이 더욱 강화된 포항은 인천의 중원과 수비를 손쉽게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뛰어난 볼 키핑 능력을 앞세운 김기동, 따바레즈, 황진성 등의 테크니션 들은 상대방 진영을 휘저어 놓는데 큰 역을 하였다. 16분, 윤원일이 골문 앞에서 핸드볼 반칙으로 경고를 받은 것이 인천으로서는 수세에 몰렸다는 증거이다. 그 프리킥을 따바레즈가 멋지게 휘어감아 찼으나 인천 골리 김이섭은 멋진 선방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 그 뒤로 경기는 팽팽하면서도 상대 골문 앞까지 거의 왔다가 돌아가는 플레이가 계속 되었다. 인천도 포항의 공격 뒤 공간을 노리고 측면에서부터 파고드는 공격이 좋았고 장신인 라돈치치의 타겟 플레이도 여전히 주효했다. 다만 포항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조금 더 우위에 서 있어 그것을 적절하게 막아낸 것이 인천에게는 불운이었다.
.. 포항은 28분 결정적 찬스를 다시 한 번 맞이한다. 황진성이 왼쪽 측면을 돌파하다 페널티 박스 외각 중앙에 있는 따바레즈에게 연결 시켰다. 이것을 따바레즈가 김이섭 골키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드롭킥으로 감아 찼으나 아쉽게도 골대 윗 그물에 들어가고 만다.
.. 잠시 소강상태에 빠져들어 가는 듯 한 경기는 다시 인천의 반격으로 시작되었다. 방승환이 우측 측면에서 파고들면서 슛을 날렸으나 골문을 벗어났고, 이후에 38분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하였으나 포항 골키퍼 정성룡의 선방에 그만 막히고 말았다.
.. 잠시 수세에 몰렸던 포항이 빛을 발한 건 전반 종료 직전인 45분. 인천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고 난 뒤 하프라인 근처에서 볼을 잡은 따바레즈가 전방의 황진성에게 단숨에 연결되는 킬 패스를 넣어준 것. 황진성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20여 미터의 드리블 돌파 후 슈팅을 날렸으나 이번에도 역시 김이섭에 손에 걸리고 말았다.
.. 깊어지는 비와 함께 약화된 포항의 경기력, 손발이 맞기 시작한 인천의 경기력.
.. 포항 스틸러스 3-5-2(HT)
.. 하프 타임에 포항은 김기동 대신 오승범을 집어넣고 전술을 살짝 변경한다. 김기동이 좀 더 테크닉 위주의 앵커맨 역할과 2선에서의 중거리 슛을 책임지고 황지수가 홀딩 역할을 전담했다면 오승범 투입 후에는 오승범과 황지수가 홀딩과 앵커맨의 역할을 분담하는 3-5-2 시스템으로 변화된 것. 비가 굵어지자 테크닉을 중심으로 하는 김기동 보다 파워가 좋은 오승범을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 하지만 인천의 공격은 매서웠다. 시작과 동시에 무섭게 몰아치기 시작한 인천은 김상록의 크로스를 포항 수비가 걷어내자 드라간이 발리슛으로 연결하는 등 활발한 공격 성향을 보여주었다. 전반에 김기동이 중원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며 적절하게 흐름을 끊어주던 것에 비해 중원 장악력이 약화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 하지만 포항도 단순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수비를 강화하면서 역습을 노리는 모습. 특히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임중용이 걷어낸다는 것이 자칫하면 자살골이 될 뻔 한 것도 인천으로서는 끔직한 상황이 연출될 뻔 한 순간이었다.
.. 59분. 인천은 포항 수비에게 집중 마크를 당해 활발한 플레이를 못 보여주기 시작한 라돈치치를 빼고 박재현을 투입한다. 그리고 이어 60분. 포항의 왼쪽 측면을 맡아 활발한 돌파를 보여주던 박원재가 왼발에 통증을 느껴 필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사이 인천은 64분에 이 날 활발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김상록을 빼고 대신 윤주일을 투입하였다. 방승환이 톱으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윤주일이 메꾸게 되었다. 이어 65분에는 포항이 박원재를 빼고 광주 상무에서 전역하여 임대 복귀한 김광석을 투입하였다. 이때부터 경기 페이스는 급속도로 인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 70분경부터 빗줄기는 폭우로 변했다. 70분에는 포항이 전방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황진성을 빼고 이번에 전남으로부터 이적한 이광재를 투입했다. 그리고 이광재는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역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76분에는 인천이 방승환도 교체하며 박승민을 투입하였다. 이에 따라 인천은 선수들의 위치가 다시 변했다.
.. 인천 Utd. 4-4-2(76)
.. 포지션이 변하고 난 뒤 굵은 빗속의 인천은 공격을 한층 강화하였다. 84분 드라간은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에서 대포알 같은 슛을 날렸으나 골대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면서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게 하였다. 87분에는 S석을 제외한 전 관중이 인천을 연호하면서 인천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포항은 수세에 몰려 마땅히 공격으로 전환되지를 못했다. 76분경부터는 원사이드 경기로 진행된 것이나 마찬가지.
..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 92분에 드라간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보았지만 역시 노골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휘슬이 불려 타임아웃. 경기는 10분 고기구의 골로 앞서간 포항의 1:0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 경기 기록
팀
구분
GL
AS
GK
CK
FO
OS
ST
PK
YC
RC
인천 Utd.
1st
0
0
5
3
12
0
7
0
1
0
2nd
0
0
6
5
9
0
12
0
0
0
total
0
0
11
8
21
0
19
0
1
0
포항 스틸러스
1st
1
1
6
2
13
1
6
0
2
0
2nd
0
0
6
2
11
3
2
0
1
0
total
1
1
12
4
24
4
8
0
3
0
.. 드디어 깨진 포항의 문학 징크스!
.. 작년도에 좋은 성적을 보였던 스쿼드에서 전력의 누수가 거의 없었던 포항이 아직 조직력이 덜 다져진 인천을 무너뜨린 한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봤을 때 전반에는 포항이 좀 더 앞선 모습이었으나 후반 들어가 완전히 균형을 잃으면서 경기 내용적으로는 무승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포항의 경우, 여전히 포항의 중원장악력이 뛰어나다는 점과 공격의 예리함이 더해졌다는 것. 고기구의 개인기량이 상당 부분 향상되어 올 시즌 득점 레이스에 주의해야할 선수로 올려둘만 하다는 점. 황진성-고기구의 호흡이 잘 맞아 들어가 상대 팀들은 반드시 마크해야할 선수로 올려두어야 한다는 점 등이 주목할 만하다. 다만 후반 들어 집중도가 떨어지고 상대의 공격적인 자세에 밀려난 것은 반드시 고쳐야할 숙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의 호흡 문제도 심각히 고려해봐야할 문제다.
.. 인천의 경우 많은 수의 주전들이 바뀌었고 포메이션도 감독도 바뀌었으나 기본적인 조직력이 탄탄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용병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공격전개 방식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고, 수비 성향의 4백은 공격 자원의 수 부족을 낳는 한계가 있다. 거기에다 전체적으로 결정력이 있는 선수가 모자란 것은 올 시즌 인천을 두고두고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팀이 꽤 많이 개편되었는데도 좋은 조직력과 여전한 투지, 홈팬들의 열렬한 사랑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으로 보인다.
.. 평점 및 한마디.
.. 정성룡 6.5 적절한 선방. 공의 변화에 대한 대응속도도 늘었다. 올 시즌 No.1 골리 유력 .. 김성근 6.0 주장으로서 적당한 흐름. 적절한 수비. .. 황재원 5.5 주력은 좋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불안한 끝마무리. .. 이창원 5.5 전반은 굿. 후반은 살짝 아쉬움 .. 황지수 6.5 중원 수비를 다 책임졌다해도 과언이 아님 .. 김기동 6.0 중원에서 패스를 끊고 공 배급을 하는 건 따바가 아닌 김기동 .. 박원재 5.5 적절한 좌측 돌파. .. 오범석 5.0 그다지 보여준 게 없음 .. 따바레즈 5.5 몇몇 패스와 슛은 좋았지만 여전히 드리블이 길다. .. 황진성 6.5 스트라이커인가 공미인가. 프리롤, 좋은 패스, 멋진 어시스트. .. 고기구 7.0 개인기량 급상승. 이젠 이동국 안 아쉽다. MOM. .. 오승범 5.0 이 날은 그다지 보여준 것이 없다. .. 김광석 5.0 수비적인 재능은 있어 보이지만 공격 전개에는 아쉬움 .. 이광재 5.0 생각보다 빠르다. 하지만 크게 보여준 건 없다.
.. 김이섭 5.5 김이섭의 선방이 없었다면 2골은 더 들어갔을 것이다. .. 전재호 5.0 오범석이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좌측면은 잘 막아냈음 .. 임중용 5.0 자살골이 날 뻔 한 거 말고는 발군의 수비력 .. 이동원 4.5 딱히 눈에 띄질 않았다. .. 윤원일 4.5 핸드볼 파울일 때는 암울했음. 박원재에게도 많이 뚫렸다. .. 김학철 4.5 전반 중반까지 포항 중원에 많이 밀렸으나 혼자서 고군분투 .. 김상록 4.0 이적 후유증? 좀 더 지켜봐야겠으나 예전의 그의 포스는 어디론가 사라짐 .. 드라간 4.5 잘 했다. 단지 거기까지. .. 방승환 4.5 마무리의 아쉬움 .. 라돈치치 4.0 동작이 다 읽힌 듯 수비를 벗겨내지 못하고 있음 .. 데얀 4.5 그나마 적절한 데뷔전. 하지만 역시 마무리의 아쉬움 .. 박재현 4.5 공격 전개에서 김상록 보다 훨씬 나았음 .. 윤주일 4.5 김광석을 꽤나 괴롭혔다. .. 박승민 4.0 골문 앞에 존재하긴 했지만 그다지 보여준 게 없다.
.. 한 줄 요약. .. 문학 징크스 격파. 포항 올 시즌 해 볼만. 인천은 조직력 다지는 게 급선무.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