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헌트 1 - 5점
오노 후유미 지음, 박시현 옮김/북스마니아

..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의 십이국기에 대해서는 2003/10/15 - .. 十二國記 「月の影 影の海」(십이국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에서 한 번 이야기 한 바가 있는데, 십이국기 시리즈와 시귀(屍鬼)라는 작품을 읽고 양 쪽 다 큰 감명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그래서 구입한 책이다.

.. 십이국기와 시귀로 파악한 오노 후유미의 글은 기본적으로 인간 본성을 철저하게 파고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니,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게 파고 들어서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파괴력 있는 필력을 지녔다. 그래서 사실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의 이름을 믿고 구입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 양산형 라노베와 큰 차이 없는 정도의 글이다.


..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은 십이국기나 시귀만큼 서로를 파고들지 않는다. 내적으로도 그리 강하게 집착하지 않는다. 아무리 1인칭 시점이고, 약간의 러브라인을 그리고 싶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오노 휴유미에게 감명 받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뭐 방향성이야 작가의 마음이니 어쩔 수 없다 쳐도, 대신 다른 부분에서 빛이라도 났다면 좋았을 텐데 딱히 코미디 스럽지도, 그렇다고 정말 무섭지도 않은 약간 어정쩡한 포지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어느정도 오노 휴유미 다운 반전도 있었고, 캐릭터들의 묘사가 이후 십이국기나 시귀에서 보이는 그 신랄할 정도의 심리 묘사의 편린 정도는 보이지만 그저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 아무리 생각 해도 이 글을 십이국기나 시귀 이후에 썼을 것 같진 않아서 일본 위키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그 이전 작품이었다.

.. 참고로 이 '고스트 헌트'라는 제목은 원래부터 사용한 것은 아니고 원제는 '악령(悪霊)' 시리즈였다. 이번 구교사 괴담이 원래는 1989년 발매된 '악령이 한가득!?(悪霊がいっぱい!?)'라는 제목이었고, 2010년 발매된 신장판에서 '고스트 헌트 - 구교사 괴담'으로 이름이 바뀐 것.

.. 그리고 십이국기 시리즈의 사실상 첫 권인 '마성의 아이(魔性の子)'가 1991년. 시귀는 1998년작이므로 작각의 필력이 다져지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혹은 필력이 있더라도 의도적으로 제한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은 간다.

.. 고스트 헌트 시리즈(원래의 악령 시리즈)가 7권까지 중에서 6권까지가 91년까지 출판되니까 찬찬히 다 보다보면 필력이 올라온 명작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은 들지만, 우선적으로 1권에서는 거기까지는 짐작할 수 없으니 이게 또 미묘.


.. 2권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묘한 아이템이다. 시리즈 전체에 대한 평은 마지막까지 읽어보아야 할 수 있겠으나, 일단 1권만 봤을 때는 적어도 내 기대치에는 못 미쳤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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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0 - 4점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북폴리오

.. 카네시로 카즈키의 신작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날 책 고르다 발견하고 '헉' 하면서 바로 구매했다. 어쩌다가 GO로 연결된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는데 그동안 빠질 한 것도 있고 해서 읽긴 읽어야 겠다는 의무감과 함께 구입.

.. 더 좀비스 시리즈(레볼루션 No.3 - 플라이 대디 플라이 - SPEED)의 프리퀄 적인 이야기다. 더 좀비스가 어떻게 해서 탄생 했는가 뭐 그런 내용. 그리고 이 정도면 짐작이 가시겠지만, 그냥 작가 공인 외전 쯤 되는 이야기다. 분량은 솔직히 말해 레볼루션 No.0의 1/3 수준이며, 내용도 별 것 없다. 작가 스스로도 더 이상 좀비스 시리즈를 쓸 일이 없다고 하는데 아마, 편집부에서 하도 강하게 밀어 붙여 이걸로 땡! 이라는 느낌으로 쓴 게 아니었을까 할 정도의 내용.

.. 내용이 별 게 없으니 딱히 쓸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좀비스 시리즈 전체를 일관하는 테마는 살아 있다지만 뭐 그거야 한 두 번 봤을 때 감동적인 거지 같은 류의 테마와 에피소드가 반복되는데 그걸 또 이제와서 재밌다고 느끼기도 미묘하고, 그 이상으로 필력도 떨어진 느낌이고.

.. 난 카네시로 카즈키가 SPEED 즈음부터 영화편, SP에 이르러서는 필력이 바닥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해 보였는데 이 작품은 그 이하, 냉정하게 말해서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 녀석이었다.

..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이 녀석의 책값이 무려 정가 11,000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내가 빠돌이라 어쩔 수 없이 샀다지만 진짜 이건 뭐라 해야 하나……. 그동안 일어 양장본도 다 모아뒀는데 이건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 사도 안 읽을 게 거의 99%인데 하아.

.. 얼른 카네시로 카즈키가 제대로 글을 써서 2003/10/13 - .. GO 이 글 처럼 찬사의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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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岳飛伝(악비전)은 銀河英雄伝説(은하영웅전설)이나 創竜伝(창룡전)이나 アルスラーン戦記(아루스란 전기) 등으로 유명한 田中芳樹(타나카 요시키)의 편역작입니다.

.. 01년에 中央公論新社에서 출간하기 시작해서 전 4권으로 마무리 됐던 것을 03년에 講談社에서 판권을 사들인 뒤 전 5권짜리로 재 출간한 녀석입니다. 제가 산 건 코단샤판입니다.


.. 깔삼하게 5권 지르기~

.. 깔삼하게 5권 지르기~





.. 악비(1103~1142)는 송대의 유명한 장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앞 링크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쉽게 말해 관우와 동급으로 여겨지는 한족(漢族) 최고의 영웅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싸우면 항상 이기는 상승(常勝)장군으로 유명했고, 그 결말이 정적에 의해 제거 되었으며 시호조차 충무(忠武)이니 어찌보면 한국 시점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릴만한 장군이기도 합니다.

.. 제가 악비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陳舜臣(친슌신, 추리/역사소설 작가, 중국계 일본인)씨가 집필한 '소설 십팔사략(小說十八史略)'을 읽고부터입니다. 그 당시 해적판으로 출간되어 '황하'라는 타이틀이었는데 집에서 수십번도 더 읽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 중 한명이었습니다. 물론 한족 정통론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렇습니다만 어찌됐거나 그 소설에서도 매우 눈에 띄는 인물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 한국에서 딱히 악비가 조명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중국역사에 빠져있단 고교시절까지는 딱히 악비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질 못했습니다. 물론 악비를 파고 들어야겠다는 매우 강한 의식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당시 넘쳐나던 삼국지, 일본 전국시대 책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송대의 이야기, 특히 북송 말기~남송시대의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지요.

.. 그러던 와중에 2004년 정도에 타나카 요시키의 아루스란 전기 신간이 대체 언제나오나 하고 일본 쪽 웹을 뒤져보다가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이 악비전입니다. 악비라는 이름이 반갑기도 했지만 편역이라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타나카 요시키가 과연 중국어를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가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당시는 돈 문제도 그렇고 다른 부분에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있던 시점이라 악비전에 대한 것은 접어둔 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부터 제가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에서 일서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당시 사용 기한이 다 되가는 마일리지를 소진한다고 책을 몇권 주문했습니다. 근데 거기에 타나카 요시키의 책 한권을 끼워 넣었더니 그게 품절이라고 예치금으로 넣어버리더군요. 덕분에 그 예치금도 쓸 겸 책을 훑어보다가 이 악비전이 생각나서 결국 질러버렸다는 이야깁니다.


.. 현재 1권을 읽고 있는데 진도는 무지하게 안나가는 편입니다. 일단 오랜만에 한자표기 넘쳐나는 텍스트를 읽어서 그런점도 있지만 문체 자체도 옛날 중국 이야기를 하는 풍이고, 내용 자체도 역사서에서 읽었던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중국에서 나온 영웅담 혹은 무협지를 그대로 가져다 쓴 느낌?

.. 옛날 옛날 하늘의 신선이 애로 태어났고…… 뭐 이런 식이라 되려 친슌신류의 날카롭고도 고증이 되어 있는 내용과는 차이가 좀 있네요. 어찌보면 창룡전의 느낌과도 비슷할런지 모르겠지만 창룡전은 일단 배경이 현대라서 느낌이 좀 다르긴 하네요.


.. 아무튼 자세한 감상은 전권을 다 읽고 나야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찌보면 타나카 요시키 자신이 SF무협지 혹은 페르시아 무협지를 쓰던 작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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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당당하게 수위를 차지하는 사람이 바로 金城一紀(카네시로 카즈키)이다. 한국에서도 상영된 적이 있는 'GO'의 원작자이고 그의 작품 중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한국에서 영화가 리메이크 되어 이준기 주연의 '플라이 대디'로 개봉된 적도 있다. 또,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꽤 큰 인기를 얻어 최근작인 영화편을 제외하고는 전 작품이 하드커버 번역본으로 발매되기도 하였으므로 아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쨌거나, 그의 최신작인 영화편을 9월 12일에 주문했는데 마침 오늘 도착했기에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 2007년 7월 26일 발매되었으며 발행일은 2007년 7월 30일이다. 코단샤(講談社)에서 카도카와 쇼텐(角川書店)으로 옮겨갔다가 이번에 슈에이샤(集英社)로 옮겨온 듯 출판사는 슈에이샤이다. 가격은 1,470엔(세금 포함)이며 ISBN 번호는 978-4-08-775380-6 이므로 구매하실 분음 참고하시면 되겠다. 아 물론 일본어 판이므로 번역본은 조금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책의 내용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내용 소개도 그다지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전혀 모른다. 만약 다 읽게 되면 감상문을 올릴 수도, 혹은 일에 치여 안 올릴 수도 있다. 뭐 그런 것.

.. 앞 표지

.. 앞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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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二國記 「月の影 影の海」
.. 십이국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 作 : 小野不由美(오노 후유미)
.. 出版社 : 講談社X文庫(코-단샤X문고) 「WHITE HEART」

.. 어느날인가 NHK BS2의 예고편을 보고 있을 때였다. 뭔가 중국풍의 옷. 제목부터 「十二國記(십이국기)」. '어라 이게 뭐지? 새로 환타지 만화가 나왔나?' 라는 나의 사소한 의문을 뒤로한 채 「판매량 250만부의 베스트셀러 드디어 애니메이션화!」따위의 광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250만부!?' 라는 경악을 뒤로한 채.

.. 전 시리즈 통계수치겠지만 환타지 소설로서 이만한 판매량을 보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밑에 적은 「GO」도 센세이션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고 영화화도 됐지만 25만부가 팔렸으니까. 어쨌거나 우리 부대는 BS2를 보면 애들이 난리를 치는 그런 부대였는지라 아무리 그게 시청가능시간대라 하더라도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관심을 가진 채로 하루하루 지나가다가 읽을거리를 보내달라는 나의 요청에 누군가가 보낸 소포 가운데 떡하니 들어있던게 바로 이 소설이었다.

.. 마침 「GO」의 일본어 문고판의 완독에 자신감을 얻어 페이지를 넘겼으나…. 이 놈의 책은 생전 처음 보는 한자가 왜 그리 많은지, 무슨 생전 처음보는 단어들의 난무에 이건 완전히 탈력. 초반에는 무려 30분에 한 페이지 볼까말까한 최악의 속도를 자랑했다(물론 지금 초반부를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래도 끈덕지게 읽고 읽고, 또 읽고. 미친듯이 읽고 읽고, 또 읽고. 어려운 단어는 제끼고 분위기로 대충 때려박고 어떻게든 진행은 계속됐지만 결국 2002년 10월 경에 상권 중반부쯤에서 일단 포기. 그 당시 또 봐야할 책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고, 브레이크 에이지 소설 「ブレイクエイジ(브레이크 에이지) EX L'oiseau Bleu」가 너무나 읽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 그리고 2003년 3월. 휴가 복귀 시 브레이크 에이지 소설을 제주공항 기무대에서 커트당한 이유로 부대에 돌안와서는 읽을 것도 없는 탓에 뒹굴뒹굴 거리다 결국 다시 손에 잡기 시작. 2003년 4월 4일에 상권 완독. 그 이후에 탄력 받아서 5월 3일에 하권 완독(그 사이에 읽은 책이 10권…). 뭐 그런 페이스로 책을 읽었다. 여전히 일본어 실력이 받춰주질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해도 어려운 말은 넘기고, 감으로 때려 잡고. 그렇게 힘겹게 한장 한장 읽어나가기를 한달여(실제로 다른 책을 훨씬 많이 읽었으므로 그다지 걸린 시간은 대단치 않겠지만;;) 결국 끝냈다.

.. 서론은 이만하고. 이 책은 오노 후유미씨가 1992년에 쓴 글이다. 원래 오노 후유미씨는 호러 작가라고 한다. 「WHITE HEART」문고 내에서도 호러 작품이 몇 개 있다. 무려 그 중에는 일러스트가에 「波津彬子하츠 아키코(「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작가)」가 있을 정도. 처음 이 글을 작성했을 때는 읽지 않았었지만 이후에 이 오노 후유미씩의 작품중 「屍鬼시귀」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는 정말 글 잘쓴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니까. 아무튼 나중에 아토가키(あとがき후기)를 읽고서 안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오노 후유미씨에겐 첫 환타지 작품이라 한다. 이전에 「마성의 아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 최초이고, 후기에도 들어있지만 이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편은 「마성의 아이」의 속편이자 본편이라 하니까. 자세한 것은 후기에 들어있으므로 그렇다 치고.

.. 어쨌거나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은 한 소녀가 자신이 속해있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 끌려와서 겪는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마지막까지 다 보면 참 스케일이 크단 걸 느낄 수 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고. 첫인상이 너무 어려워서인지 다소 접근하기가 힘들었으나 이 책에서 집요하게 전개시켜나간 이야기는 그런 부수적인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좋다할 이야기이다.

.. 주인공은 이세계에 끌려온 자이다. 당연히 기댈 사람 하나 없는 것이다. 보통의 환타지 물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주인공이 이세계에 떨어져 겪는 어려움쯤은 별 것 아니지 않은가. 아니라 하더라도 주위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한에 가까운 도움을 받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 「中島陽子(나카지마 요-코)」역시 별반 차이는 없다. 하지만 그 도움을 받기 전까지. 그러니까 상권 엔딩까지의 요-코는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한다. 괴인에게 납치(?) 당하듯 이 세계에 끌려왔더니 괴인은 습격당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본인은 관청에 끌려갔다가 사형시킨다는 말에 어떻게든 도망쳐서 다시 요마(妖魔)들에게 습격받고 그 덕에 죽을뻔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게다가 도움을 주던 사람들은 친절을 내세우면서 마지막에 뒤통수 치는 사기를 쳐대고. 덕분에 요-코는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소녀로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잘 알 수 없는 세계에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어떻게든 살아남아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려져 있는 환타지 답지 않은 환타지 소설.

.. 게다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파란 원숭이(靑い猿)」는 요-코의 무의식을 대변하여 사람의 무의식에 존재할만한 불안과 불신을 후벼파댄다. 요-코가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사람이 그리울 때마다 요-코가 갖고 있던 칼 -요-코를 납치한 「케이키」가 준 칼로 후에 「수우도(水遇刀)」라는 이름이 밝혀진다- 은 늘 무의식적으로 열망하고 있는 곳의 환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직후에 파란 원숭이가 나타나 요-코의 불안과 불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기묘한 -어찌보면 이중인격과도 같은- 대화는 이 작품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직설적인 문체로 표현하는 것이다.

.. 또한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요-코가 「케이왕(景王)」인 것을 알고나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 어린 소녀로서 자신의 어깨에 짓눌려지는 책임감. 스스로는 왕의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남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모습은 자신의 자아가 어떻게 되어갈지 고민하는 소년소녀기의 고민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인간은 책임을 지는 것으로 「어른」이 된다. 처음에는 모자라더라도 조금씩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왕」이라는 자리의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보통의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보통 사람이 쉽게 질 수도 없다. 그런 자신에게 그런 것이 너무도 힘글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이 왕이 되지 않으면 나라가 황폐해지고 국민이 힘들어지고,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있어도 제대로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 현 시점에서의 자신 때문에 하게 되는 그 고뇌는 나아갈 길이 눈 앞에 있음에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무척이나 고민해야 하는 소년소녀기의 고민인 것이다.

.. 그 고민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요-코는 이쪽 세계에 대한 지식이 무척이나 부족하다. 지식이 없다는 것은 살아나갈 힘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사람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갈 힘이 있을 때, 그 때야말로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살아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때, 겉으로든 속으로든 무언의 계산이 있던간에 자신을 끝까지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배신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믿음이 배신당하더라도 자신이 믿고 있다는 그 한가지를 위해 자신을 움직이는 삶.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고 자신의 생에 대하여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내린 결론을 믿어보는 삶. 그것을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이 「십이국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이다.

.. 실제 사회에서도 남을 쉽게 믿는 사람은 이용당하기 쉽다. 물론 타카하시 신(高橋しん)의 만화 「いい人(좋은 사람)」의 주인공 「유지」처럼 어처구니 없다면야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라면 그런 건 환타지라고 얼마든지 웃어줄 수 있는 환타지이기에 더 보고 싶은 그런 인간군상이 아닌가. 누구든 면상에 웃음을 띄우지만 그 것이 가식되지 않고, 혹은 지어내지 않고 남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물론 역으로 모두가 진실된 표정만을 짓는다면 그 역시 힘든 세상이겠지만.

.. 또한 누구든지 자기 진로에 대해서 혹은 자신의 인격에 대해서 고민하고 마련이다. 그것이 깊든 얇든간에 자신의 삶은 소중한 것이니까. 눈 앞에 보이는 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를 통해 무엇을 얻어나가는지는 개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쉽게 생각하지 말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결론이 나면 그 것을 실천하고. 그것이 후회가 적은 삶이고 그런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내린 결론에 「책임」이라는 것을 질 테니까.

.. 어쨌거나 이 세상을 살아가든 다른 세상을 살아가든. 자신의 처지와 능력. 세상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과 남을 믿을 수 있는 마음. 살아가려는 열정과 노력. 이 것을 갖추어야 「제대로」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이다. 자신과 남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대해 알지도 못한채 방황하는 요-코의 모습은 내가 쉽게 되어버리던 「폐인」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물론, 이 쪽의 「폐인」은 쓰레기 소리를 들어도 할말 없는 그야말로 썩은 모습이었지만.

.. 나 자신은 얼마만큼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나 자신은 얼마만큼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나 자신은 얼마만큼 자신을 믿을 수 있는가. 나 자신은 얼마만큼 남을 믿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나 스스로도 아직 긍정적이지 않다. 이미 쓸데 없는 지식만 있고, 실제 살아나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는 희뿌연 안개와도 같은 삶이다. 물론 꾸준히 느끼고 조금씩 변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나이보다는 훨씬 어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리디 어린 모습과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좀 더 노력해야 할텐데.

.. 확실히 요즈음의 환타지와는 다르다. 원래 환타지라는 걸 전혀 몰랐던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되 이 책의 느낌이 훨씬 좋다.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칙칙하지도 않다.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해피 엔딩이다. 좋지 않은가. 삶이 그렇게 행복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자신이 행복하길 발는 사람이라면 해피엔딩쪽이 좋지 않은가.

.. 이 책을 막 읽었을 당시 나의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이 글을 다시 쓰고 있는 지금의 나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다. 이 글을 처음 작성했던 때 이후로 반년가까이 흘렀지만 글쎄 얼마나 변했을까. 조금은 긍적적인 모습일까.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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