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시 홈페이지에 공지되어 있는 시외버스 시간표를 믿었다가 제대로 배신당하고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인천 문학 주경기장. 약간 흐린 날씨였지만 그럭저럭 선선해서 경기하기에는 나름 괜찮아 보였습니다. E석 입구로 들어갔더니 E석 1층을 꽤나 많이 채운 관중. 오른쪽 N석에서는 인천 서포터들의 서포터송이 터져 나오고 왼쪽 S석에서는 포항 서포터들이 보였습니다. 마침 경기도 시작 직전이기에 일단 E석 아무데서나 자리를 잡았지요. 시작 전부터 E석 곳곳에서 서포터들의 인천 콜에 동조하는 인천 콜이 터져 나오고 원정팬인 저로서는 많이 부담되는 분위기.

..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시작한지 11초만에 김명중의 나이스 어시스트백패스를 가로챈 방승환이 포항의 골망을 가르고야 맙니다. 이 경기, 포항으로서는 지독하게도 안 풀릴 거라는 복선이라도 되는 듯 허망하게 네트를 흔들어버린 골을 쳐다보면 순간 할 말을 잃고 주위는 대환호. 어지간하면 E석에 남아 있을까 했지만 도저히 남아있기가 힘들더군요. S석에 가서 아는 형에게 잠시 인사를 하고 W석 기자석에 가서 지인을 만나고 골 상황을 확인하고 출전 명단을 훑어보았더니 역시나 2군 출격. 그리고 파리아스는 분노했는지 12분만에 김명중을 교체 아웃시켜버리더군요. 여담이지만 방승환의 이 골은 K리그 최단시간 골 기록이 되었습니다(이전 기록은 대우:한일은행 1986년 4월 12일 권혁표. 19초. 연맹기록 참조).

.. 전반 초반에 엄청나게 밀리더니 중반 이후부터는 팽팽한 접전이었습니다. 인천은 양 사이드의 공간 침투가 돋보였고 노종건의 안정적인 뒷받침과 드라간-데얀 외국인 콤비가 종횡무진 활약했습니다. 반대로 포항은 따바레즈가 분투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안 맞는 느낌. 우측의 박희철은 한 템포가 느렸고 좌측의 김광석은 보다 수비적으로 치우친 느낌이었습니다. 전방의 이광재와 최효진도 2% 아쉬운 느낌. 그러다 인천의 우측을 파고든 최효진이 엔드라인에서 좌측 뒤로 올린 크로스를 김광석이 발리슛을 때렸을 때는 아쉽게도 상단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는 등, 포항의 고질적인 골결정력 부족이 다시 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하프 타임에 컵라면을 하나 사서 S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묘하게 뭔가 일어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예감은 아랑곳 없이 후반도 팽팽하게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골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지지부진한 박희철이 나가고 최태욱이 투입. 간만에 필드에서 보는 최태욱이지만 그 동안 좋은 모습을 못 보여서 큰 기대는 할 수 없었습니다. 막상 플레이를 보니 돌파는 되는데 동료와의 호흡이 안 맞는 느낌. 차라리 꾸준한 경기 출장이 이루어지면 좋아지지 않을까 싶은 느낌. 시간이 흘러 후반 중반. 다음 수원전을 대비한 것인지 따바레즈를 빼고 신광훈을 투입. 그 때 저와 지인은 자꾸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하는 이광재를 빼고 신광훈을 투입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따바레즈를 빼더군요. 최태욱 투입시에 우측으로 내려갔던 최효진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보직되고 신광훈이 우측을 맡았습니다. 최효진은 한 경기에 세군데 포지션을 맡는 멀티능력을 보여주기도.

.. 하지만 후반 33분 데얀을 잠시 놓친 것이 화근이 되어 그대로 골을 헌납. 공간을 내어준 것은 아쉬웠지만 골 자체는 정말 잘 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89분. 여기서부터 드라마는 시작됩니다. 마침 울산 서포터 지인에게서 우성용 PK를 얻어냈다는 문자가 와서 답을 하려는 바로 그 순간.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밖에서 최효진이 공을 잡더니 순간 눈 앞에 직선으로 공간이 열리고 그 자리를 알고 있었다는 듯 왼발로 강슛. 89분 내내 인천의 골문을 잘 지킨 김이섭 골리에게 뼈아픈 실점을 허용하게 합니다. 하지만 기쁨의 세레머니도 없고 무감각한듯이 돌아서는 최효진. 경기 내내 지고 있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요. 조금은 거만하게도 조금은 독하게도 보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최효진의 중앙 기용이 무척이나 성공적이라는 평을 저와 지인 둘이서 내리고 있던 찰나.

.. 우성용의 PK 성공 소식이 들림과 동시에 갑자기 김광석이 왼쪽 측면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엔드라인 근처에서 중앙으로 찔러넣은 패스를 골 에어리어 정면으로 뛰어들어온 최태욱이 오른발로 차 넣고 동점골. 포항 선수들도 서포터도 89분에서 90분까지 일어난 1분간의 기적에 환호했습니다. 경기는 2:2 종료. 마침 울산이 SK를 1:0으로 승리함에 따라 울산이 인천을 골득실에서 제치고 컵대회 1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습니다.

.. 지금까지 울산과는 서로 많은 고춧가루를 뿌려대서 그런 걸까요. 정말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울산의 1위 등극-4강 직행이라는 드라마를 찍게 해 주더군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이 경기 막판의 동점골 드라마는 포항으로서도 선수들로서도 많은 의미를 갖게 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축인 선수들이 전부다 2군. 1군 선발 수준이라고 해봐야 따바레즈, 최효진 정도였고 오승범이나 이창원, 이광재는 로테이션 멤버. 나머지는 그냥 2군선수들. 이렇게 2군이 주축인 경기가 포항은 컵대회에서 3번이 있었는데 울산전 0:0 무승부. 대구전 3:1 승리. 인천전 2:2 무승부를 일궈내며 컵대회 승점 11점 중에 무려 5점이나 얻어냈습니다. 총 10경기 중에서 3경기 5점. 거기에다 패배도 없다는 점과. 결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점을 만들어냈다는 점. 조직력이 덜 갖춰지고 꽤나 투박한 플레이가 많았지만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은 서포터로서, 팬으로서 찡한 감동을 주더군요.

.. 오늘 경기를 두고서 언제까지고 저는 이렇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시작 1분과 마지막 1분의 드라마. 이렇게 말입니다.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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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of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