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를 처음 접한 것은 2002년 8월의 외박 때였다. 외박 나가서 군바리가 하는게 무엇이 있겠나. 술먹고 영화보고 자고. 이 세가지 뿐이다(물론 여자랑 같이 나간다거나… 혼자 나가서 여자를 부른다거나 하면 다르지만). 어쨌거나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비디오를 대여하려다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던 중에 이 놈의 케이스가 보였다. 뭔가 느낌이 머리에 팍! 하고 꽂히는 게 잡아야 될 것 같았다. 왠지 놓치면 허무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아도 되는. 뭔가 평균작 정도는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같이 외박나간 후임녀석들의 취향이 각각이라 평작은 되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이…).

.. 물론 「GO」를 보기 전에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의 가슴을 감상하면서 「이쁘긴 이쁘네 가슴…」 이라고 중얼거리며 맥주 한 모금에 담배 한 대 빨았고,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면서 「저런 악녀가 내 취향이지.」 라고 낄낄거리며 맥주 두 모금에 담배 두 대 빨았다. 전자는 무척이나 재미없는 영화라서(작품성 쪽은 신경끄고 봤다. 물론 귀찮아서… 게다가 빨리감기 하면서 보느라 더더욱… 파악조차 불가능. 후임애들이 빨리 넘기자고 성화여서… -_-;;) 그랬지만 후자인 「결혼은 미친짓이다」 같은 경우엔 무척이나 재밌었고, 그 영화를 보면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는 느낌인데 여튼 그 영화를 보고나서 간부네 집을 습격하여 술에 떡이 되어 돌아와 다음날 한낮까지 자고 일어난 다음에 빌려왔다는 걸 겨우겨우 기억해서 본 영화가 바로 「GO」다.

.. 시작부에 나오는 대사에 잠깐 머리가 멍해졌었다. 「名前ってなに? バラと呼んでいる花を別の名前にしてみても美しい香りはそのまま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봐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걸.」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로 시작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하기야 케이스에 재일…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나왔을때부터 짐작했지만 바로 뒤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에서 「어라 웬 재일한국인?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놈 고른 거 아닌가?…」 라는.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これは僕の戀愛に關する物語だ。(이것은 내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라는 대사 한 마디로 걱정을 접을 수 있었다. 아무리 진지하고 혹은 접근하기 힘든 (또는 어려운) 내용이 있다해도 그 것을 유머로 풀어나가겠다는 자세가 보였으니까. 게다가 일본식 말장난과 개그에 익숙한 나로서는 얼마든지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주인공인 「杉原(스기하라)」 역의 「窪塚洋介(쿠보즈카 요-스케)」 라는 배우의 연기는 볼만 했으며, 여주인공인 「櫻井(사쿠라이)」 역의 「柴笑コウ(시바사키 코우)」 역시 이번에는 발랄하고 특이한 소녀 역을 충분히 잘 연기해냈다. 영화 「BATTLE ROYAL」에서는 낫을 든 악녀 「相馬光子(소-마 미츠코)」 역을 맡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던 그녀로서는 오히려 이런 역이 잘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두명의 배우를 만난 것만으로 이 영화는 그들의 팬들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을 정도이다. 연기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연기는 둘째치고, 이 영화는 재밌다.

.. 배우 및 스탭의 이야기로 더 들어가자면 「鐵道員ポッポヤ(철도원)」으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大竹しのぶ(오오타케 시노부)」가 스기하라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그 카리스마 넘치는 아들을 대빗자루로 팰 수 있는 역인 만큼 그 정도의 배우가 어울렸을 것이다. 감독인 「行定勳(유키사다 이사오)」는 영화 「러브레터」등에 참여했던 인물로 그 때로 부터의 인연들이 이영화까지도 이어졌는지 조연들에는 이와이 슌지 월드에서 볼 수 있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국배우에는 명계남과 김민이 출연하지만 그거야 뭐... 한국에서 한국영화로 상영하기 위한 편법이고 (…뭐 한국영화로 산정하는 법...이라는 게 있다. 귀찮게스리. 한국에서는 한국영화로 상영됐다. 물론 일본에서는 당연히 이 영화를 일본영화 취급한다) 제작에는 「東映(토-에이)」 한국의 「스타맥스」에서 자본을 댔고 삼성 쪽에서도 스폰서가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개봉 1주일만에 내렸다는 소문도 있다(난 그 때 아마 군대에 있었을 것이다. 와하하;). 일본통들에게는 나름대로 꽤 호응이 좋았다는 소문도 들었으나 일반인들의 인기는 최악이었다고 한다. 하기야, 일본문화와 일본적 코드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라면 좀 재미 없었을지도.

.. 어쟀거나 즐겁게 봤다. 그것도 무척이나 즐겁게. 발랄한 내용 속에 어두운 내용을 겹쳐놓고 발랄함으로 끌어내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별로 유쾌하지 못할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유쾌하게 나아간다. 내가 놀랐던 점은 바로 이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감독에게 많은 호감을 느꼈다. 스탭롤 같은 것도 보질 않았고, 사실 주연 배우 이름 자체도 이 때는 몰랐었다. 그냥 「재밌다.」라는 느낌과 생각외로 「괜찮았다」라는 느낌이 강해서 다음번에 자세한 걸 알아봐야지. 라는 생각 정도. 나중에 「씨네 21」싸이트에 가서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한 다음에 결국 원작소설이 있다는 것과 감독의 이름. 배우의 이름 같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결국엔 휴가 나가면 원판 소설을 구입하리라 결정지었다.

.. 그리고 9월 13일. 휴가를 나와서 후임과 아침부터 족발에 소주 한병씩 걸치고 난 뒤 오락실에서 틀린그림찾기에 열중하다가 (원코인으로 라스트까지 갔는데 결국 라스트에서 좌절했다 흑…) 들린 교보문고에서 바로 구입한 것이 바로 일본어판 「GO」였다. 번역본이 나왔으리라 생각했지만 번역본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원작은 원작으로 읽어주는 게 제일 낫다. 번역을 하면 원작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변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또한 한국어의 느낌과 일본어의 느낌이 달라서 똑 같은 느낌을 받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일본어 소설을 읽을 수 있나 없나 하는 테스트의 느낌도 있었고, 여튼 18,240원이란 거금을 주고 구입을 해버렸다. 그 후 휴가 내내 이동중에는 자던가 혹은 이 책을 읽어댔다(지하철이 최고였다. 지하철 및 버스에서 날 지루하지 않게 해준게 바로 이 책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영화와는 달리 사쿠라이의 헤어스타일이 숏컷으로 나오는 등 (…난 긴 머리가 좋대니깐…) 몇 가지 다른 부분이 눈에 띄지만 영화는 영화화하면서 앞 뒤를 바꿔놓았다던가 대사의 순서가 뒤바껴 있다던가 등장인물이 좀 다르다던가 하는 것은 있어도 주요 대사는 거의 다 살려놓았으므로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밖엔 말할 수 없겠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개그를 더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각색해야만 했던 캐릭터들도 눈에 띄었다. 스기하라의 친구인 「加藤(카토-)」같은 경우가 그랬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연약하지도 여자애들 난파(…무슨 뜻인지는… -_-;; 동급생 1 실행파일이 바로 저 뜻이다… 대충 알아듣자) 하는 데 목숨 걸지도 않는다 (나중에 찾아낸 만화판에서는 아예 우락부락이다… -_-). 게다가 영화에서는 아무리 봐도 스기하라라는 캐릭터가 멍해 보이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싸움도 잘 하지만 머리도 냉철한 나이스 쿨 가이- 그 자체다. 그 뿐인가. 스기하라 녀서은 어려운 이야기도 술술 해나간다. 철학, 과학. 그것도 나로서는 손대기도 싫은 미토콘드리아 DNA (난 생물쪽은 진짜 관심이 별로 없다;; BT쪽 계열은 나와는 상성이 최악이다;) 같은 소리를 해대는 녀석이다. 물론 내용이야 인문과학 쪽이긴 하지만서도…

.. 여주인공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 중역의 딸이지. 집에 AV룸이 있을 정도이지. 명문 여학교의 학생이지. 이른바 오죠-상(お?さん, 우리말로 하자면… 참한 아가씨) 타입으로 보이는, 물론 속이야 엽기적인 그녀 뺨치게 골 때리는 여자애지만. 당신은 이해할 수 있나. 학교 정문을 넘을 때 보이는 팬티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으면서 남자랑 같이 땅에 누워있다가 유성을 동시에 봤다는 이유로 부끄럽다고 난리치는 여자를! …뭐 소설에서는 서로 멋있는 것 찾기를 하면서 영화라던가 음악이라던가 회화라던가 오페라라던가… 지들끼리 잘 놀지만 영화에서는 그 독특함이 더하다. 첫 데이트 장소가 국회의사당 앞이라던가. 심심하니까 하얀 선만 따라서 걷는다던가. 여주인공의 매력은 영화쪽이 더 강하다. 시바사키 코우가 이쁘게도 긴머리 포니테일을 하고 나온 탓도 있지만(…) 좀 더 톡톡 튀는 성격의 아가씨이기 때문에. 소설판은 뭐랄까, 독특하긴 해도 영화보다는 이미지가 덜하다. 어찌보면 그저 아가씨 타입이기도 하다. 영화를 먼저 본 덕분에 내내 영화 속의 사쿠라이의 이미지가 겹쳐서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영화에서는 당당히 스기하라에 맞먹을 독특한 캐릭터. 가 소설에서는 만나는 부분에서는 동일하나 사귀는 부분에서가 약간 약한 감이 없지 않다.

.. 소설과 영화와 만화가 다 어딘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같다. 라는 것은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테마가 일관되게, 그리고 강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 글의 작가 카네시로 카즈키는 이 작품으로 「直木賞(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순수문학에 주는 상인 「芥川賞(아쿠타가와상)」과는 달리 대중문학. 엔터테인먼트 문학에 주어지는 상이다. 그만큼 「GO」라는 녀석은 대중에 더 가깝게 호흡하고 현실에 더 다가서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작가는 스스로를 「코레안 저패니즈(한국계 일본인)」이라 칭하며 (사실상 한국인 3세이다 부모가 다 한국계니까) 이름도 한국명이 아닌 일본명인 「金城一紀(카네시로 카즈키)」를 사용한다. 이는 자신이 「재일 한국인」이라는 국적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껬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모가 한국인이라 해서 그들을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가. 그 정신 토대의 대부분이 일본문화 속에서 자라난 것인데… 민족을 구분짓는 것에 대하여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사실 민족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면 때려치워버릴 생각조차도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싫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하는 건 아니며 그저 별 생각이 없는 것일뿐.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끝끝내 지켜내야겠다 싶은 것도 아닌… 아무 생각 없는 정도). 이런 복잡한 현상을 그는 이 소설에서 매우 유머러스하며 즐거운 문제로 진지하게 풀어낸다. 이 소설에서 그는 재일한국인 문제를 간단하게 표현해버린다. 그 표현내용이야 이 작품의 중점 테마이기 때문에 뭐… 어차피 작품을 보게되면 바로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한국인에게 배타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본.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재일 한국인 젊은이의 이야기. 즐거운 내용은 확실히 아니지만 즐겁게 읽힌다. 문제도 내용도. 의도적인 유머이지만 거북하거나 잡스럽지 않다. 깔끔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실 경험이 어느정도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과장스런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야 소설인데 뭐. 너무나 현실적이라면 더 피곤해질 뿐이 아닌가.

.. 애초에 이런 테마를 잡고 들어갔는데 처절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으며 절절하지도 않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이야기 같은 느낌. 단지 그곳에 재일한국인. 이라는 문제가 하나 더 끼어들어간 것 뿐인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야말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리라. 그리고 이 내용에 공감할 수 있다면. 민족이니 뭐니 하는 쓸데 없는 족쇄에 묶이지 않고. 단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이 사랑스럽다면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작가는 무척이나 많은 에피소드를 할애해야 했다. 재일 한국인의 입장과. 결국 그들도 같은 인간이다. 라는 것을 일본인들에게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끊는 이유는 보나마나. 희망을 주기 위해서겠지. 좋지않은가 희망. 하기야, 실패한 사량얘기 따위에서 배울 것은 그다지 없으니까.

.. 분명히 차별받는 삶은 고달프다. 뭐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보라… 같은 말은 필요없겠지. 우리가 나가서 차별받는이상으로 우리는 한국에서 남들을 차별하고 있고. 비단 외국인만이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차별은 남아있는 이 땅에서 차별의 아픔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니 이미 익숙해져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고달픈 삶 속에서 사랑이라는 테마로 희망을 찾아내는. 「재일한국인이니 뭐니 하는 차별 문제는 꽉막힌 너희들이나 따져라. 나는 사랑이나 할련다! 너희들이 날 차별한다 해서 난 달라지는 것 따위 없다!」라고 부르짖는 듯한 이 작품 속에서 숨이 트이는 청량감을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청량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 카네시로 카즈키라는 작가가 가진 무서운 힘이 아닐까.

.. Words of Yu-Tak Kim, the elemental of the wind.
Posted by elofwind
,